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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평석
-이종준 변호사-
형사소송에서, 1심 증인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
형사사건 1심에 출석한 ‘증인의 증언을 믿은’ ‘1심 법관의 판단’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을까? 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1도5313 판결은 ‘제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항소심의 판단이 1심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1심 판단을 뒤집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위 대법원의 견해에 따르면, 1심 증인의 증언에 대한 1심 법관의 판단은 ‘사실상 항소심 법관을 기속’시킬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나, 심급제도, 자유심증주의, 피고인의 방어권 등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위 대법원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2. 사건의 진행 경과
‘피고인이 공소외 1.에게 마약을 교부하였거나 매수하여 투약하였다’는 공소사실에 대하여, 1심은 공소외 1의 법정진술, 검찰작성 피의자신문조서 등을 근거로 공소사실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 항소심은, 여러 가지 사정을 들어 공소외 1.의 진술이 믿기 어렵다고 보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은, 항소심 법관이 증언의 신빙성에 관한 제1심 법관의 판단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하였다.
3. 대상판결의 요지
원래 제1심이 증인신문절차를 진행한 뒤 그 진술의 신빙성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논리성·모순 또는 경험칙 부합 여부나 물증 또는 제3자의 진술과의 부합 여부 등은 물론, 법관의 면전에서 선서한 후 공개된 법정에서 진술에 임하고 있는 증인의 모습이나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 증인신문조서에는 기록하기 어려운 여러 사정을 직접 관찰함으로써 얻게 된 심증까지 모두 고려하여 신빙성 유무를 평가하게 된다. 이에 비하여, 현행 형사소송법상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에 대한 항소심의 신빙성 유무 판단은 원칙적으로 증인신문조서를 포함한 기록만을 그 자료로 삼게 되므로, 진술의 신빙성 유무 판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진술 당시 증인의 모습이나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을 신빙성 유무 평가에 반영할 수 없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지니게 된다.
여기서 앞서 본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의 정신에 따라 위와 같은 제1심과 항소심의 신빙성 평가 방법의 차이를 고려할 때, 제1심판결 내용과 제1심에서 적법하게 증거조사를 거친 증거들에 비추어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관한 제1심의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되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거나, 제1심의 증거조사 결과와 항소심 변론종결시까지 추가로 이루어진 증거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관한 제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항소심으로서는 제1심 증인이 한 진술의 신빙성 유무에 관한 제1심의 판단이 항소심의 판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관한 제1심의 판단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
4. 대상판결의 문제점
가. 대상 판결은, 1심 법관의 심증이 ‘사실상 항소심 법관을 기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납득하기 어렵다.
나. 심급제도 위반
(1) 법원조직법 제8조는 ”(상급심 재판의 기속력) 상급법원 재판에서의 판단은 해당 사건에 관하여 하급심(下級審)을 기속(羈束)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제1심 법관의 판단이 명백하게 잘못되었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심 법관이 믿은 증언의 신빙성을 항소심 법관이 뒤집을 수 없다면, 사실상 1심 법관의 심증이 항소심 법관의 심증을 기속하는 것으로서, 상급심이 하급심에 기속되는 꼴이 되고 만다. 이것은 위 법원조직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다. 자유심증주의 위반
(1)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자유심증주의)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 법률심인 상고심과는 달리, 항소심은 속심으로서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다. 항소심 법관의 경력이 1심 법관의 경력보다 더 풍부한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관계 인정과 관련한 증언의 신빙성 평가에 있어, 항소심 법관도 자유롭게 심증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런데, 1심 법관의 심증에 사실상 구속된다면, 특별한 법적 근거 없이 형사소송법 308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라는 대법원의 판단의 문제점
(1) 대법원이 1심 법관의 심증을 더 우월하게 평가하는 중요한 이유는 제1심 법관이 ’진술의 신빙성 유무 판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진술 당시 증인의 모습이나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을 신빙성 유무 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2) 그러나, 위 이유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가) 우리나라 재판은 단시일에 집중해서 심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장기간에 걸치는데, 법관의 인사이동과 겹치는 경우, 증인신문에 관여하지 않은 법관이 증언의 신빙성을 판단하여야 할 경우도 있다. 그 경우 1심 법관의 심증이나 항소심 법관의 심증이나 차이가 나는 부분이 없다.
(나) 법의 여신상은 눈을 가린 채 천칭을 들고 있다. 증인의 모습, 진술 태도, 진술의 뉘앙스 등은 오히려 1심 법관을 속이거나 1심 법관이 착각하게 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라. 피고인의 방어권 제한
(1) 현행 재판 실무는,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면, 1심에서 증언한 증인을 항소심에서 다시 소환하지는 않는다. 소환을 강하게 요청하였다가는, 선고 때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법관마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형사소송은 민사소송과 달리 대부분 관련 당사자들의 진술이 주요한 증거라는 측면을 고려해 보면, 1심 법관의 심증이 사실상 항소심 법관을 기속하는 것은, 피고인 입장에서는 방어권이 제한되는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 판결문에 나타나지 않는 뉘앙스, 태도가 재판에 반영되는 것은 ‘법관의 마음으로 판결하는 것’일 뿐 증거에 따른 재판 결과라고 할 수 없고, 당사자로서는 판결문에 나오지도 않는 사정 때문에 판결을 받은 것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불복하여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5. 맺음말
증인의 증언에 관한 신빙성 판단에 있어서, 1심 법관의 판단이 사실상 항소심 법관의 판단을 기속하도록 하는 위 대법원 판례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라는 측면에서 일응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급제도에 반하고, 항소심 법관의 자유심증이 제한되는 것이며, 실무상 피고인의 방어권이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높다고 할 것이다.